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청색 작전 (문단 편집) == 서론 == ||{{{#!wiki style="margin: -6px -10px" [youtube(1CqGeAmVu1I, start=389)]}}}|| || 청색 작전의 전개도[* 독일군의 공세가 끝난 뒤 진격로 1시 방향에 있는 강을 끼고 있는 검은 점이 바로 [[스탈린그라드]]이다.] || [[바르바로사 작전]]과 [[태풍 작전]]의 실패 이후 [[나치 독일]]은 모스크바 공격을 담당하던 중부 집단군의 심각한 손실을 고려할 때, 모스크바를 재공격하는 것은 무리한 발상이라고 생각했다. 그 대신 독일군의 고질적인 연료 부족 문제를 해결하고 소련의 전력을 약화시키기 위한 목적으로 [[캅카스]]의 유전 지대를 침공하는 계획을 세워 이를 청색 작전이라 명명하였다. 독일 국방군은 [[제2차 하르코프 공방전]]에서 소련군이 막대한 피해를 입은 직후 작전을 실행해 파죽지세로 진격해나갔다. 소련군은 이러한 독일의 공세에 제대로 대응도 하지 못했으며 독일군은 곧 캅카스로 진입하고 볼가강 인근에 있던 주요 요충지 도시인 [[스탈린그라드]]를 점령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스탈린그라드 전투]]에서 독일군은 패착을 면치 못하게 되었다. 독일의 바르바로사 작전 당시 우크라이나를 상실해 식량 부족에 시달릴 위기에 놓인 소련군은 미국이 보내주는 [[렌드리스]]로 대량의 고품질 비상식량들을 보급할 수 있었는데, 여기에 힘입어 소련군이 스탈린그라드에서 파괴된 건물들의 잔해 더미를 이용해 끊임없이 극단적인 시가전을 벌이는 등으로 스탈린그라드에서 격렬한 저항을 3달 동안 지속하며 독일군의 공세를 막아낸 것이다. 이렇게 벌어준 시간 동안 소련군은 서서히 독일군에 대해 수적 우위를 점했고, [[천왕성 작전]]을 통해 최종적으로 33만 명에 달하는 독일군 대군을 포위 섬멸하며 청색 작전을 사실상 중단시켰다. 독일군은 스탈린그라드의 포위된 병력을 구하기 위해 공중 보급과 구출 작전([[겨울폭풍 작전]])을 실행하는 등 갖은 노력을 다하였으나, 결국 캅카스에서 후퇴하게 되고 유전 지대를 점령하기로 했던 청색 작전은 완전한 실패로 끝나게 된다. [[제3차 하르코프 공방전]] 이후로는 양측 모두 한동안 소강상태에 접어든다. 한편 청색 작전은 히틀러의 지나친 간섭으로 만들어진 실패로 알려져 있으나 대체로 독일군 자체의 한계에서 비롯된 바도 큰 것으로 평가된다. 스탈린그라드 점령을 담당하던 파울루스 제6군 사령관은 병력 부족에 시달리고 있음을 지속적으로 경고했고 스탈린그라드와 같은 대도시 점령에서는 독일군의 장기인 제병협동을 상당수 구사할 수 없었던 것 또한 문제가 되었다. 청색 작전에서의 독일군의 실패는 전세에 엄청난 영향을 준 것으로 여겨진다. 독일군의 자원과 인력은 이미 스탈린그라드에서 지나치게 소모된 상태였고 그와는 대조적으로 소련군은 독일군과 대등할 정도의 전력을 갖추는 데에 성공했다. 이 작전의 실패를 기점으로 소련군은 독일군에 대한 대대적인 공세를 펼치기 시작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